자동차 안전 표준, 볼보 자동차 스토리 1-1편

등록 : 2018-10-12 18:23:00 수정 : 2018-10-15 15:20:37 조회수 : 773

 

 

내구성과 안전함을 떠올릴 수 있는 해외 완성차 제조사로 볼보가 유명합니다. 

오래 전 자동차가 귀한 시절, 

우리나라와 심지어 북한에서도 볼보는 튼튼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스카니아와 함께 북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로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어떤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볼보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볼보의 시작은 1927년으로, 

두 설립자 아서 가브리엘슨(Assar Gabrielsson)과 구스타프 라르손(Gustaf Larson)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창립자 아서 가브리엘슨은 1911년, 

스톡홀름 대학에서 경영학 학위를 수료하고 스웨덴 하원의회 속기사로 활동하다, 

1916년에 산업용 볼 베어링 제조사 [SKF]의 영업부서로 입사해 

1922년부터 세일즈 매너저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SKF라는 기업은 1907년 설립된 스웨덴의 다국적 기업으로, 

오늘날 볼 베어링 및 볼 베어링 관련 제품, 항공기 부품, 공작기계 등을 제조하는 

하이테크 기업입니다. 

 

또 다른 설립자인 구스타프 라르손은 아서 가브리엘슨이 

경영학 학위를 수료할 즈음인 1911년부터 1916년 사이 

엔진 제조사 화이트&포프(White&Popp)에서 수습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엔진 및 기계 에 대한 내용을 배웠습니다. 

 

1917년부터는 스웨덴 왕립공대에 입학하여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1917~1920년 SKF근무, 

1920~1926 갈코(AB Galco)사 근무 등 엔지니어의 길을 걷던 인물입니다.

 

아서 가브리엘슨이 세일즈 매니저로 승진하기 전인 1921~1922년, 

그는 SKF파리지사에서 프랑스의 볼 베어링 업체들이 자동차 시장에 적극 투자하여 

차량용 볼 베어링 판매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했습니다. 

 

이때 자동차 시장에 호기심이 생겨,

SKF에 프랑스와 동일한 세일즈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안했고, 

동시에 가혹한 스웨덴 기후에도 잘 버티는, 

튼튼한 자동차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일정 기간 동안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터라, 

서로 알고 있던 직장동료였고 자동차 사업에 대한 생각도 어느 정도 맞았기 때문에 

사업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24년 어느 날, 

두 사람은 한 레스토랑에서 바닷가재 요리를 먹으며 사업 구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바닷가재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깨지지 않고 멀쩡한 상태였습니다. 

이를 본 구스타프 라르손은

“가재처럼 튼튼한 자동차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제의했고 

이를 캐치프레이즈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후 1924년 여름부터 모델 개발에 착수했으며 

구스타프 라르손을 중심으로 

젊은 엔지니어 여럿이 그의 집에서 차량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2년 뒤 볼보의 첫 모델인 ÖV4(Open Carrage 4 Cylinder : 야곱)이 개발되자, 

아서 가브리엘슨과 구스타프 라르손은 사업 자금을 투자 받기 위해 

두 사람이 몸담았던 SKF에 차량을 들고 갔습니다. 

 

다행히 SKF이사진의 좋은 평가 덕분에 투자금을 지원받게 되었고 

정식으로 VOLVO(볼보)라는 사명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볼보는 SKF의 미국 볼베어링 시장 개척 프로젝트명으로, 

라틴어로 “나는 구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기 SKF 두 창업자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회전하는 베어링을 형상화한 화살표 문양의 엠블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볼보 앰블럼의 시작입니다.

 


 

1927년에는 투자금 덕분에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남부 예테보리 근처에 

스웨덴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ÖV4(야곱)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며 자동차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여러모로 볼보에게 있어 의미 있는 차량이었습니다.

미국식 디자인을 기초로 설계되었지만 

스웨덴의 기후가 매우 춥고 주행하기 어려운 도로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늘 염두 했기 때문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차량 품질 자체는 우수했으나 고가에 책정되다 보니, 

280여 대를 판매하는데 그쳤습니다.

 


 

 

1929년 초에는 PV650모델이 출시되었습니다. 야곱의 후속 모델로, 

당시 스웨덴을 선점하고 있던 미국 브랜드를 밀어내기 위해 제작된 전략 모델이었습니다. 

PV650은 야곱에 비해 더욱 튼튼한 차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엔진 또한 이에 알맞은 6기통 엔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후 PV651, PV652모델이 연이어 출시되었고 

승용 모델 외 소형트럭, 구급차 등 상용 모델로 파생모델이 등장했습니다. 

해당 모델들은 1929년~1933년 사이 판매되었으며, 

이 시기 2,176대가 판매되었습니다. 

덕분에 승용차 시장 및 상용 시장까지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고 흑자경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1933년부터는 트럭 모델을 내세워 유럽 각국에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이듬해 버스 모델 B1까지 등장해 점차 실적이 개선되었습니다. 

 

1935년은 볼보가 SKF를 벗어나 독립하게 된 시기입니다.

당시 SKF는 볼보의 지분을 정리했으며 볼보는 이를 계기로 독립 후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자회사가 아닌 독자 브랜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볼보는 독립 이후 

선박엔진 제조사 펜타베르켄(Pentaverken)을 인수해 선박산업으로도 진출했습니다. 

펜타베르켄은 오늘날 마린엔진(선박엔진)제조 기업인 볼보 펜타(Volvo Penta)의 전신입니다. 

이외에도 

항공기 엔진제조사, 변속기 회사, 건설장비 업체 등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며 

대형 제조사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슷한 시기, 

볼보의 최상급 모델인 PV36(Volvo PV 36 Carioca)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모델은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던 스웨덴 엔지니어들이 볼보에 합류하면서 내놓은 역작이었습니다. 

당시 크라이슬러 차량과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며 

유선형 디자인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차량이 미국자동차들과 비슷한 형상을 보인 이유로, 

스웨덴은 미국 차량들이 선점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미국 자동차 디자인 트렌드를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특히 볼보 내 종사하던 다수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 또한 북미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미국 자동차 산업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다임러-벤츠, BMW, 폭스바겐, 포르쉐, 푸조 등 

유럽 내 거의 모든 자동차 기업들처럼 전시 생산체제로 전환됩니다. 

때문에 비포장도로용 모델인 PV53-PV56을 만들어 

스웨덴군의 물자 수송을 담당했으며,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볼보는 전쟁이 끝난 이후를 대비해 소형차 개발을 따로 진행했습니다. 

전후 스웨덴을 비롯해 유럽 대부분의 국가의 국민들의 형편이 어려울 것을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그 결과 1944년 서민 자동차 모델인 PV444가 등장했습니다. 

차량은 이전에 출시된 모델보다 작았습니다. 

전쟁 직후이기 때문에 원자재와 연료 부족이 심각한 시기였으며 

자동차 또한 이에 맞게 작고 경제적인 차량이 출시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스웨덴 국민들은 이 차량이 출시되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웨덴 국민차’로 불리게 됩니다. 

해당 모델은 구식 설계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견고하고 신뢰성이 높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단종된 1958년까지 약 10만 대 이상 판매되었으며 

볼보라는 브랜드가 국민 브랜드로 떠오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부터 승용 모델에 이어 버스, 트럭 등을 생산하던 볼보는 

심지어 농업용 트랙터 분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흑자경영이 이어지면서 

1948년에는 기존 직원 수의 두 배인 6천여 명으로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흑자경영 뒤에는 승용차 생산량만큼이나 

많은 트럭, 버스, 트랙터의 생산량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 및 여러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이어지면서 

중장비 및 상업용 차량의 수요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이후에는 

건설 기계 제조사 볼린더-뭉크텔(AB Bolinder-Munktell)인수로 

자동차-항공-건설 중장비까지 두루 갖춘 대형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56년, 

‘안전하고 고장 없는 브랜드’라는 명성을 있게 한 볼보 아마존(Volvo Amazon)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모델의 특징은 세계 최초로 앞 좌석 안전벨트를 적용했으며 

나중에는 오늘날 널리 적용된 3점식 안전벨트를 기본 사양으로 적용시켰습니다. 

게다가 튼튼하게 제조되어 10년 넘게 운행해도 고장 없는 차량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마존 모델은 단종 시기인 1970년까지 4도어 모델이 

23만여 대, 2도어 모델이 36만여 대, 스테이션왜건 모델이 7만 3천여 대가 판매되었습니다. 

총 66만 7천여 대 실적이며 

이중 60%가 캐나다, 벨기에, 남아공, 칠레 등 여러 나라로 수출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최초의 스포츠카인 P1800을 선보였습니다. 

언뜻 봐도 스포츠카 같은 날렵한 형상을 갖추었지만 

시대 특유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어 프리미엄 분위기를 물씬 풍겼습니다. 

단종시기인 1973년 까지 4만 7천여대 가 판매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여러 모델에 대한 해외 수요가 급증하면서 1964년 공장 증설이 이어졌으며 

1966년에는 튼튼한 차로 유명한 아마존 모델의 후속작, 볼보 144(Volvo 144)가 출시되었습니다. 

볼보144는 이전 모델들을 거울삼아 여러 부분에 있어 차량 안정성을 강화한 모델입니다. 

 

직선적이며 박스형태를 처음으로 갖춘 모델이기도 하며 

바퀴 전체에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했으며, 전면 및 후면 충돌사고가 발생 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차체 설계가 적용되어 전 세계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1968년 출시된 럭셔리카 볼보164(Volvo 164)는 

많은 구성요소를 볼보144와 공유하여 안정성을 강화해, 

역시 튼튼한 차량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덕분에 볼보 144와 볼보164는 미국 교통 안전기준을 모두 충족한 차량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안전의 대명사 볼보’로 명성을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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